일정|2026. 4. 2(목) – 2026.4. 25(토)
박유진(Uzine Park)은 한국에서 태어나 네덜란드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작가이다. 그는 두 문화와 환경 사이를 오가며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자연이 겹쳐지는 풍 경을 회화로 풀어낸다. 작업에는 나무와 미나리와 같은 식물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 하며, 이는 낯선 환경 속에서도 삶의 자리를 만들어가고 뿌리를 내리는 존재에 대한 은 유로 작동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이동과 정착 사이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감각과 정체성 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최근에는 미나리 뿌리를 나누는 프로젝트를 병행하며, 회화적 실 천을 삶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매일 내리는 비를 원망하기보다, 나는 스스로 흐르는 햇빛을 만들어 내기로 했다. 나는 풍경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나무를 심는다. 미나리는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 든 뿌리를 내린다.”
이번 전시에서 서로 다른 장소에서 제작된 풍경들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네덜란 드에서 제주를 그리워하며 제작된 It’s a Fluid-Sunny Day에는 둥글게 부풀어 오른 산과 유동하는 길, 비처럼 쏟아지는 빛의 선들이 등장한다. 이 풍경은 멀리 있는 자연에 대한 감각적 기억이 응축된 이미지로, 물처럼 흐르는 빛이 화면 전체를 감싸고 있다. 반면 한 국에 돌아와 제작된 산의 연작에서는 보다 넓은 여백과 안정된 리듬이 드러난다. 굽이진 산의 반복 속에서 화면은 한층 느린 호흡을 갖게 되며, 다시 마주한 고향의 자연이 주는 감각적 안온함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박유진의 풍경에는 나무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풍경을 먼저 그린 뒤, 화면의 일부를 흰색으로 덮어 지우고 그 위에 나무를 심듯 이미지를 다시 그려 넣는다. 이러한 지우기와 덧그리기의 과정은 화면 위에 여러 층의 시간과 흔적을 축적시키며, 풍경을 고 정된 장면이 아닌 살아 있는 상태로 변화시킨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실제로 미나리의 뿌리를 나누어 준다. 물에 담그면 다시 뿌리를 내리는 이 식물은 낯선 환경에서도 삶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가능성을 상징한다. 특히 한 국에서 살아가는 이주 여성들에게 건네지는 이 미나리는, 그들의 삶이 부유하는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이 땅 위에 단단히 뿌리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이러한 작업의 배경에는 작가가 ‘플루이드 선샤인(Fluid Sunshine)’이라 명명한 태도가 있다. 네덜란드의 긴 겨울과 잦은 비 속에서 작가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매일 내리는 비를 원망하기보다, 흐르는 햇빛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화면 속 밝고 유동적인 색채,그리고 흐르는 빛의 이미지는 바로 이 태도의 시각적 구현이다.
박유진의 작업에서 부드러움은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이다. 그의 풍경에서 빛은 흐르고, 나무는 뿌리를 내리며, 삶은 새로운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다. 그 리고 그 조용한 움직임 속에서 우리는 때로 가장 단단한 힘이 부드러운 것에서 비롯된다 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